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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간 동안의 말씀


월(9/17): 출애굽기 16: 2-15,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광야로 들어섰을 때 그들을 곧 바로 광야를 체험하기 시작했다. 광야에서의 거친 행로는 당연한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전적인 권능 아래에서 애굽으로부터의 해방,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는 기적을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권능의 말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데 광야의 길인들 그분이 백성들을 나몰라라 하실까? 하지만 백성들을 광야길로 들어서자마자 당장에 배고프다고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고 원망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하는 소리를 고스란히 들으셨다. 그들을 벌하지 않으시고 먹을 것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통과해야만 하는 시험이 되어야만 했다.

화(9/18): 시편105:1-6, 37-45, 하나님께서는 이 방종하는 백성들을 왜 이렇게 사랑하셨을까? 시편 45절에 그 이유가 밝혀진다. “이는 그들이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율법을 따르게 하려 하심이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백성을 모델로 삼으시고 온 세상 만민들을 향하신 그분의 뜻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모델로 하여 온 나라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신다는 말이다.

수(9/19): 요나서 3:10-4:11,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심, 자비하심, 노하기를 더디하심, 인애가 크심을 알고도 막상 니느웨를 벌하지 않으시고 아끼시는 것에 대해 불평하였다. 결국은 그것은 자신에 대한 화풀이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각이나 뜻과는 다르신 분이시다. 그분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우리도 이미 패역의 사람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목(9/20): 시편 145:1-8, 은혜를 경험하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그가 살아야할 삶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어야 할 것이다. 시편 기자는 “왕이신 나으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하고 자신의 찬송으로 우리에게 찬송을 가르치신다.

금(9/21): 빌립보서 1:21-30,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죽음이 기다려질만큼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삶을 통해서 유익함을 얻게 되는 교인들을 위해,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위해 복음을 전하면서 교인들을 굳건히 세우는 일에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았다. 은혜 가운데는 믿음만이 아니라 마땅히 고난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면서 그는 그렇게 살았다.

토(9/22): 마태복음 20:1-16, 산상수훈의 끝맺은 예수님께서 듣는 사람들에게 듣는데 그치지 말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말씀이었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사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는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라고 긴 교훈의 끝을 맺으셨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강단의 고독을 교인들이 알고 있을까? 말씀과 실천 사이의 심연을 인해 강단이 무너지고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잊혀지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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